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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한국사] 5부. 영원한 이방인, 고선지의 두 얼굴

by 볼로냐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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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영원한 이방인, 고선지의 두 얼굴

고선지에 대한 실제 역사가들의 평가는 극단적이라고 한다. 전투에서 대단한 공로를 세웠지만 당나라 사회에서 끊임없이 사회적 차별을 겪었던 ‘경계인’ 이었던 비정상적 방법으로 출세를 갈망했다.

1장 영원한 이방인의 굴레를 벗어나 성공을 갈망하다

 668년 9월 당나라 군대가 평양성을 함락하며 700여 년 가까이 이어져온 고구려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당나라에 강제로 끌려간 고구려 주민들은 고구려출신으로 따로 등록돼 관리되었다.

고선지가 태어났을때는 고구려가 사라진지 이미 3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한번도 고구려의 옛 땅을 밟아본 적이 없는 그저 고구려인이라는 낙인을 지고 당나라에서 태어났을 뿐. 부친인 고사계는 군인이었다. 그들이 살던 안서도호부는 강제 이주된 고구려 주민이 많았고 온갖 차별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고사계는 아들 고선지가 군인으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어릴 때부터 목숨을 내놓고 전장에 나가게 하곤 했다.

부몽영찰이라는 티베트 출신의 지휘관 밑에서 군공을 세우던 고선지는 740년 첫 번째 단독 지휘에 나서게 된다. 황제는 반란군을 진압하기를 명했고 소수의 기병으로 적의 배후와 측면을 기습해 게릴라 전술을 써 달해 부족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말도 모두 빼앗는다. 본격적인 서역 정벌의 시작 고선지는 747년 3월 보병과 기병 을 합쳐 원정군 총 1만명을 데리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던 타클라 마칸사막의 북단에 있는 험준한 천산산맥을 통과하기로 한다. 3개월후 우방군이 있는 곳에 도착 며칠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아침 일찍 파륵천을 순식간에 건너 연운보다 요새를 기어올라 공격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당나라 대군에게 무너지고 만다.

완벽한 승리. 연운보를 장악하며 토번이 서북쪽으로 진출해 서역 왕국들과 제휴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것. 10여년이라는 기간동안 당나라를 괴롭히던 서역의 주도권을 쥔 토번의 우위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2장 슈퍼스타의 탄생 그리고 몰락

힌두쿠시를 넘어서 만들어낸 신화 이번엔 험준한 힌투쿠시산맥을 넘어 소발륙국으로 진격하기로 한다. 병사와 말들이 하나둘씩 발을 헛딛고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병사들은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두려움에 떠는 군율을 엄중하게 적용해도 통제가 되지 않던 때 눈앞에 소발률국의 주민이 나타난다. 자신들은 수도 아노월성에서 왔다며 토번과도 연을 끊은지 오래고 고선지장군을 기다리다 못해 마중나왔다고 한다. 이것은 고선지가 꾸민 연극이었는데 수많은 병사들의 원성에 심복 20명을 몰래 본대보다 앞서 보내 소발률국 사람처럼 위장하고 나타나게 해 사기를 높인것. 소발률국에 도착한 고선지는 항복을 권하지만 토번이라는 구원군이 올것으로 믿고 왕과 왕비등 여러 수령들이 산속으로 숨어버린다. 구원군이 오는 유일한 통로인 다리를 고선지가 끊어버리자 오던 토번구는 등나무 다리의 한쪽 끝 절벽아래도 떨어지고 만다. 그 다리를 만드는 데는 1년이 걸리는지라 승리는 고선지의 몫이 된 것이다.

소발률국이 투항하자 당나라에 등을 돌렸던 서역 20여개국뿐 아니라 서방의 72개국이 당나라를 두려워하며 조공을 바치게 된다. 출신의 한계와 조급한 출세욕 원칙적으로 직속상관인 부몽영찰에게 먼저 전황과 승전 내용을 전해야 했는데 욕심에 곧바로 조정에 승전 보고를 하려 한 것을 보고 부몽영찰은 대노하고 만다. 자신이 못한 일을 고선지가 직접 명을 받아 해내자 고선지의 감시자 역할을 맡았던 환고나 병령성이 현종에게 은밀한 서신을 보낸다. 이렇게 혼을 내면 누가 조정을 위해 애쓰겠냐는 내용이었다.

 현종은 고선지에게 부몽영찰이 맡던 안서사진절도사로 임명한다. 그러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시선이 늘어만 갔다. 과욕이 불러온 참사 고선지가 석국 정벌에 나서자 석국의 왕은 항복하지만 석국을 거침없이 짓밟고 저항 없이 항복한 왕 거비시를 체포해 당으로 끌고 간다. 군대를 풀어 왕궁과 수도 일대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기도 했다. 그렇게 탈취한 재물을 아낌없이 주변에 뿌린다.

고선지는 사실상 중앙아시아 지역의 총독이나 다름없었고 이 시기 당의 실크로드 교역은 최전성기를 맞았다. 수도 장안은 더욱 번성했고, 현종과 양귀비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화려한 공적의 이면에 감춰진 악행이 드러나기 시작한것. 고선지가 끌고온 석국 왕 거비시를 압송해오자 현종은 곧바로 처형하고 그 소식이 서역의 여러 나라에 알려져 반발하기 시작한다. 751년 음력 7월 동서의 양대 세력이 붙기에 이르른다. 유명한 탈라스 회전이다.

닷새동안 전투를 치루던중 같은 편인 칼라록이 반란을 일으켜 아군의 후방을 치기 시작하자 본대는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만다. 전세가 불리해저 몰래 철수하려는데 좁은 산길을 지나다보니 앞서 철군했던 다른 부족의 군대와 말, 낙타등과 엉키고 만다. 결국 퇴각하던 당군은 흩어진채 아랍군에 붙잡히거나 죽음을 당한다. 이렇듯 고선지의 성공에 대한 조급함과 과도한 욕심이 실패를 불러온것. 탈라스 전투 이후 한족 왕조는 다시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주변의 여러 세력이 모두 이슬람 세력으로 돌아서며 종교, 문화 역시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는 동서 문명 교류사의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는 것. 고선지가 탈라스에서 지지 않았다면 서역 일대 많은 나라의 정치 문화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것.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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